꿈꾸는 이연희2011.11.04 11:44

 


밤 11시 30분.


영종도도 개발 붐을 타면서 신도시 쪽에 가면 새벽까지 네온사인이 휘황찬란 하지만 구 도심(도심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냥 읍내 정도로 부르는 것이 어울리겠다)에 해당되는 우리 동네는 해가 지면 컴컴하고, 수퍼마켓이 문을 닫는 11시 쯤 되면 그야말로 깜깜 절벽이 된다.


버스도 10시 30분 쯤이면 끊기고, 택시도 일부러 전화를 걸어야 오는 콜택시 뿐이라 외지 사람이 왔다가 밤에 차 없이 나가려면 여간 막막한게 아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서울이나 인천에서 술을 마시고 대리 운전을 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간혹있다. 그러다보니 집에 가는 길이면 영종도가 예전의 영종도 같지 않은데다 신도시도 있고 공항도 가까우니 웬만한 교통편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선뜻 손님을 모셔온 대리운전 기사들이 어쩔 줄 모르고 길거리에 서 있는 광경을 가끔 접하게 된다.


아주 급한 일이 없으면 나는 이 분들을 지하철역까지 모셔다 드리곤한다. 내가 꼭 착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난감한 처지를 아는 웬만한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


그날 밤 11시 30분은 그나마 몇 대 서 있는 가로등도 꺼지고 비 까지 추적추적 내려 어디선가 귀신 튀어나올것처럼 스산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한 중년의 아저씨가 저 앞에 서서 손을 흔든다.


먹고 살기 참 힘들지.....


유난히 피곤한 밤이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모종의 동료의식같은 것이 느껴져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차를 세웠다.

"타 세요."


안도감이 느껴지는 걸음으로 잽싸게 차 쪽으로 몸을 돌리던 그가 내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뒤로 물러선다.

"괜찮아요. 타세요."


머뭇거리던 그 남자.
"저 남자예요."


철없는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자꾸 망설여지는게 싫은지) 빨리가라고 손을 내 젓는다.


등 떠밀리는 기분으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데, 갑자기 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걸까? 이 상황과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면 과연 그는 제대로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남자는 나를 보호해줬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부터 말이다. 게다가, '늦은 밤 아무 남자나 선뜻 태워주는 선의가 흉악한 범죄로 되돌아올수도 있으니 앞으로도 절대 그런 짓은 하면 안된다고 힐책하듯'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진... 그런 표정으로) 힘주어 "저 남자예요" 라고 말했다.


생전 처음 보는데다, 못 생겼다고 할수도 없지만 호감이 간다고 할 수도 없는 그저그런 외모의, 허름한 차림새의 남자에게... 나는 실로 오랜만에 사랑받는 느낌을 가졌다. 가족이라서 사랑하거나 인류애적으로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냥 여자로서 사랑받는 느낌. 사랑하는 여자를 보호해 줄 줄 아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풍모, 그 테두리 안에 있을 때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안도감같은 것 말이다.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한 생각인지는 나도 안다. 그는 아마 술에 취해 괜한 호기를 부렸던 것일 수도 있고, 자기가 했던 멋진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 차가 떠난 뒤에 "아.. 씨발. 내가 왜 그랬을까?" 밤새 땅을 치고 후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은 .... 그냥 내 멋대로, 그 느낌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동시에 서러움도 복받쳐 올랐다. 내가 갈증냈던 것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여자로서 사랑받는 다는 느낌이 새삼 낯설었던 것에 대해, 무덤덤해진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현실에 대해... 복잡한 심정이 되어 나도 모르게 한 없이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이젠 ... 뭐.


괜찮다.


2011. 11. 4.
1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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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희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