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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이연희2012.08.03 23:57

 

 

"무슨 일이든 제발 한가지를 꾸준히 좀 해봐!"

스물 다섯살 즈음인가? 초등학교 동창과 술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지하철 2호선, 충정로 역과 아현역 사이쯤에서 들은 얘기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의 정황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왜 일까? 그 애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뭐라고 딱히 반박은 못했지만 살짝 억울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이만저만 억울했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십년이 흘렀다. 중년이라 말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내 경험과 직관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들고 내가 책임 질 테니, 잘 알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관심있는 척 끼어들지 말고 딱 거기 까지만 해라.. 라는 것이 '인생 선배로서 하는 이야긴데....' 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충고에 대한 나의 기본 입장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이런 오만 방자한 태도에 대해 스스로도 약간의 모호함과 죄책감이 있었다. 이렇게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폼도 안 나고 모아둔 것도 없이 초라하게 나이만 먹어가면 어쩌나? 성실하게 한 가지 직장이나 업무에 충실하면서 적금도 모으고 때 되면 전세 자금을 장만하고 그러다 대출 끼고 집도 사고, 애들 학자금도 장만해 두고, 보험도 몇 개 들어두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다행히 지금은 그런 류의 불안함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어떤 계기로 이렇게 편해졌는지 몰라도, 이젠 더 이상 큰 아파트에 살며 큰 차를 굴리고 때 되면 클럽매드나 PIC로 여행을 다니는 친구네 가족들이 부럽지 않다. 그들의 삶을 보며 빨리 쫓아가야 할 텐데.... 하고 불안해 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는 그동안 재미있게 살아봤잖아. 친구들이 못 한 걸 많이 해 봤잖아. 돈은 없지만 그게 다 자산인걸. 최소한 나는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구. 남들에게 으시댈 차나 집은 없지만 경제적인 편안함과, 부부관계의 평화와, 나 자신의 행복, 자존감,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 미래 ... 그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운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구.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의 삶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똥씹은 표정으로 소중한 하루 하루를 지옥으로 만들지 않았잖아. 회식이나 모임이나 접대다 해서 가정을 팽게치지 않으면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직장으로 남편을 내몰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를 학원차로 뺑뺑이 돌리거나 아스팔트에서 놀도록 방치하지도 않았어. 좋은 친구들을 초대해 가끔 파티도 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봤고, 또 떠날 궁리를 하며 가슴 설레기도 하고....  흠. 이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온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한다.

 

스물다섯살은 불안한 나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세상엔 그 당시의 나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직업이 수 만가지가 넘고,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 할지 좀 더 여행을 하며 넓은 세상을 둘러봐야 할지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평.생.직.장을 결정하라니?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돈을 모아 결혼하고 또 돈을 모아 아이들 키우고, 또 돈을 모아 노후를 대비하고 ..... 그럼 모을 필요가 없이 쓰기만 하면 되는 시기는 오직 노인이 되었을 때 뿐 아닌가? 평생 돈을 모으기만 하다가 막상 쓸 시기가 왔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뭘해야 재미있을 지도 모르겠고... 결국 자식들에게 물려주어 화근과 무능의 씨앗만 만드는 그런 시나리오를 ....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엄마는, 인생선배라는 사람들은.... 하다못해 나랑 똑같이 방황할 나이인 친구들 까지도 내게 '안정과 성실의 삶'을 강요했던가?

 

스물 다섯살. 나름 좋은 직장을 몇 달 만에 그만두고, 허접한 몇 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가난한 배낭여행자로 떠돌아다니고 있던 나로서는 그 때 친구의 말에 반박할 만큼의 자신감도 '지금은 이렇지만... 나에게는 이런 이런 플랜이 있다구' 라고 말할만한 청사진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말도 못 한채 억울함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나이를 먹었다. 

 

앞으로 더 나이를 먹을테고 더 많은 경험을 할 테지만 

그간의 삶을 돌이켜보면 

'인생은 (의식하든 하지않든)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라는 생각이 든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까지 따지자면 그간 가져봤던 직업이 스무가지쯤 되고 

그 일들 중에는 전혀 개연성 없어보이는 ....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 위한 것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이, 작은 경험 하나 하나가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그래서 (아직도 찾고 있는) 평생 직업을 좀 더 완숙하게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단단하고 거친 초석이 되고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긴 잡설은 그만두고, 이제 원래 하기로 했던 나의 직업 히스토리를 정리해보자. 

 

17세 - 아동극 연극배우. 재미있었다. 엄마속은 무지하게 썩이며 꿋꿋이 가난뱅이 연극인들의 삶을 경험했다. 아동극단의 연극배우들의 꿈은 대학로 진출이다. 대학로 진출 연극배우라고 뭐 별것 없고 무대에서 대사라도 하나 따 낼때까지 부지런히 포스터붙이고 찌라시 돌리고 밤새 술 마시고... 한 십년 정도 그러고나면, 진짜 연극배우와 별달리 할 것이 없으니 흉내만 내던 사람으로 향방이 갈린다. (아동극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야망이 있는게 아니라면) 아동극단에서 포스터붙이고 찌라시 돌리는 사람들의 꿈은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고 찌라시 돌리는 것이다. 하교 후, 혹은 방학 기간 동안 ... 나는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진지하게 이들을 따라다녔으며,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지방 공연을 떠돌아다니며 합숙도 하고 말이다.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 : 가난한 예술가가 벼슬인줄 알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고 사는 수 많은 예술인 지망생들의 허와 실을 봄. 그 중에서 특출난 끼와 노력으로 군계일학의 면모를 보여준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도 결국은 배우가 되지 못 했다.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다. 사람들의 꿈과 열정을 이용해 돈 한푼 안 주고 부려먹는 법도 배웠다.

 

18세 - 수능 직후. 신촌 라이브카페에서 서빙 겸 주방 알바. 추후 카운터를 보거나 사장님이 휴가 (또는 심야영업으로 인한 단속에 걸려 구치소에 몇 일 복역중이실 때) 가게 전체를 총괄하고 돈도 관리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기도 했었다.

첫 사회 생활이라 할 수 있는 이 카페에서 나는 많은 인연을 만들었다. 지금은 모두 생사 확인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가수 지망생 오빠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 지켜볼 수도 있었고, 전설속의 기타리스트나 한때 유명했던, 혹은 훗날 유명해진 가수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몰래 빼돌려 오는 삐짜 술 (당시엔 그렇게 불렀다.)을 어디서 공급받는지, 안주의 원가는 얼마나 들며 얼마나 많이 남겨먹을 수 있는지, 술취한 손님을 다루는 방법이나, 사장이 술을 마시지 않고도 손님들과 흥겨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 카페 비즈니스를 아주 세세하게 경험하며 훗날 내 가게를 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20세 - 아이스크림 가게 판매원. 대학 재학 중 친구와 함께 했던 아르바이트. 외국인 학교 근처에 있는 매장이었어서 난생 처음 외국인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인심후한 사장님 덕분에 평소 같으면 사먹지 못했을 고급 아이스크림을 비교적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다 가끔 엄마에게 한통씩 선물할 수 도 있어서 행복했다. 핑크색 아이스크림 아가씨 유니폼에 특별한 애착을 지닌 한 남자와 잠깐의 연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한달도 못 가 헤어졌지만 말이다. 

 

20세 - '주간~' 으로 시작되는 주간 잡지 방문판매원. 대학시절. 형편이 어려웠던 남자친구와 함께 벼룩시장으로 찾은 알바.  시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한권팔면 얼마가 떨어지는 시스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한 만화나 연예계 비화 등이 실실린 잡지를 들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 다짜고짜 '한권만 사주세요.' 하는 일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주로 고스톱 치는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동네 부동산이나 오토바이 가게 등을 공략했던 기억이다. 화투판에선 돈 가치가 하락하는 법이니까. 실제로 아저씨들은 엣된 얼굴의 여학생이 생뚱맞은 잡지를 들고 다니며 파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옛다. 5천원!' 하고 곧잘 잡지를 사주었다. 참고로 잡지의 판매가는 3천 5백원이었고 한권을 팔면 나에게 천오백원 정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나의 적절한 타켓마켓 선정으로 권당 3천원 정도의 마진을 보는 일이 꽤 많았다.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21세 - 항공사 승무원. 출석을 잘 하지 않아 거의 ALL D인 낙제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학 실력이 살짝 뛰어나고 면접 때 생글생글 잘 웃은 덕분에 대기업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별로 원하던 직업이 아니었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니 조금은 우쭐한 맛에 몇 달이나마 다녔던 것 같다. 세상을 떠돌아보니 참 좋은 직업이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싫었을까? 결국, 두 번의 방콕 비행과 뱅쿠버, 일본, 런던을 끝으로 약 네 달만에 사표를 던졌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다. 이런 식으로 쓰다간 서른 일곱 현재까지 A4 용지 다섯장은 더 써야 할 것 같다. 자정이 다 되어가고 열 페이지 정도 남은 읽어야 할 책이 있다.

 

다음 글은 또 내킬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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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희Lee